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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패션에 나타나는 미니멀리즘에 대한 유행과 흐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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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57회 작성일 17-08-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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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는 결국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반복으로 귀결된다. 우리가 미니멀리즘에 대해 고찰해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창조를  위한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마다 이 모던한 스타일은 초연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당신은 미니멀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논쟁의 여지조차 없이 완벽한 극도의 세련미? 혹은 질 샌더, 캘빈 클라인, 헬무트 랭 등 패션에 철학을 담으려 했던 1990년 대 미니멀리즘의 대가들로 기억되는가? 확실한 건 미니멀리즘은 언제나 당신의 뇌리 속에 박혀, 당신의 선택 가능한 범위 속에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뭉뚱그려 ‘미니멀리즘’이라 칭하는 패션 사조는 실은 미세한 변화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왔다. 당신이 진정한 패션 빅팀이라면 그 조그만 차이를 눈치 챌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질 샌더가 만드는 미니멀리즘과 라프 시몬스가 디자인하는 미니멀리즘을, 무슈 이브 생 로랑이 선보였던 르 스모킹과 스테파노 필라티의 르 스모킹을 같은 범주에 넣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패션 빅팀들이 미니멀리즘과 사랑에 빠지는 것에서 마니아의 길을 시작하지만 곧 화려한 장식과 복잡한 패턴에 마음을 빼앗기되 종국엔 다시 미니멀리즘으로 회귀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미니멀리즘이 꽤 오랜 시간, 그러니까 우리가 ‘모드’라 칭하는 패션 초창기부터 그 세력을 떨쳐왔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확증은 헵번이 지방시의 그 완벽한 블랙 드레스를 입고 ‘사브리나’ 역을 소화한 후 더욱 굳어졌지만 ‘미니멀리즘’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는 걸 알면 놀랄 것이다. 미니멀리즘이 본격적으로 트렌드의 강력한 한 축으로 등장한 건 놀랍게도 1990년 대 들어서부터였다. 아무리 길게 봐도 20년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브리나>가 나온 1954년엔 미니멀리즘이란 용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미니멀리즘이란 용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건 1960년 대 중반 평론가인 바바라 로즈가 집필한 글에서부터였다. 물론 그 전이라고 해서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미니멀리즘’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20세기 초 절대주의의 대표자 격인 말레비치와 다다이즘의 뒤샹은 미니멀리즘 미학 개념의 토대를 마련해줬다. 또한 발터 그로피우스와 미스 반 데어로에로 상징되는 바우하우스의 정신 역시 미니멀리즘과 일맥상통한다 할 수 있다. 패션계 최초의 미니멀리스트로는 역시 마드모아젤 샤넬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사넬 이전의 패션은 미니멀리즘이 내포하고 있는 요소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곤 했다. 디자이너의 주요 고객이라 할 수 있는 귀족 여인들은 옷을 통해 허영심을 채우고 화려함을 뽐내고 싶어 했으니까. 최초의 꾸뛰리에라 불리우는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박물관에나 들어갈 법한 옷들을 제작했고 그의 뒤를 이어 모드계의 왕으로 등극한 폴 푸아레 역시 화려함에 초점을 두고 디자인 했다. 블랙 앙상블을 입은 샤넬에게 푸아레가 “장례식이라도 가나보지?”라고 으르렁거리자 샤넬은 “당신 장례식에 간다.”고 대꾸할 정도로 당대의 패션계를 양분했던 이 둘은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 푸아레의 의상이 과장되고 심지어 무대 의상같다고 비난했던 샤넬은 심플한 실루엣이 훨씬 우아할 수 있음을 진작부터 깨달았다. 시인 폴 모랑의 전기 <코코 샤넬>을 보면 그녀가 “특이하고 괴상한 옷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어쨌든 나는 그에 동조하고 싶다. 세헤라자데처럼 입으면 쉽게 관심을 끌 순 있겠지만, 리틀 블랙 드레스가 훨씬 고급스럽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샤넬이나 지방시와 같은 선구자들은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주머니 속에 삐죽 튀어나온 송곳과도 같은 존재였다. 더구나 그들이 선보인 다른 의상 -부유층의 구미에 맞는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들-을 보면 여전히 패션에 미니멀리즘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말하기 힘들 것 같다. 1960년대, 비로소 태동한 미니멀리즘 건축과 의자를 비롯한 산업 디자인 쪽에서 중요시 여기던 미니멀리즘(물론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이 패션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960년 대 부터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미니멀리즘이 고급스러움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미니멀리즘의 시작은 다소 키치한 문화에 발을 담그고 있다. 시작은 도버 해협 건너 영국에서부터였다. 메리 퀀트와 앙드레 쿠레주는 영국발 미니멀리즘의 진원지였다.

미니스커트의 보급, 고급스럽고 엘리트적인 옷보다는 대중적이고 세속적인 스트리트 룩에 관심을 보였던 메리 퀀트가 젊은 세대에 특히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면, 토목 공학이라는 전공과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로부터 받은 훈련을 통해 얻게 된 탁월한 비례 감각을 바탕으로 한 앙드레 쿠레주는 부유층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과장된 것은 모두 떼어버리고 심플하고 정확한 선과 잘록한 허리선 대신 A자로 떨어지는 단순한 실루엣을 내세웠던 앙드레 쿠레주는 순수한 의미에서 첫 번 째 미니멀리스트로 볼 수 있다. 이때의 미니멀리즘은 한마디로 ‘혁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단순한 룩은 당시의 관점에선 도저히 디자이너의 손길이 미쳤다고는 보이지 않는 성의없는 스타일일 뿐이었다. 소재의 고급스러움이 디테일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앙드레 쿠레주 역시 바이어스 밴딩과 장식 스티치 등 단순하면서도 미래적인 요소를 자신의 미니멀리즘에 추가하기 시작한다. 이런 미래 풍 미니멀리즘은 후에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이념적 후계자라 볼 수 있는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에 의해 2008 S/S 발렌시아가의 미래주의와 플라워 프린트가 결합한 파격으로 진화한다.

파리에서도 본격적으로 미니멀리즘은 그 세를 얻는다. 무슈 이브 생 로랑은 몬드리안 룩과 르 스모킹으로 패션사의 한 획을 그었고, 지방시의 뮤즈 헵번은 LBD의 매력을 전 세계 여인들에게 각인 시켰다. 반면 ‘재키’ 케네디 여사는 심플한 슬리브리스 드레스에 그로그랭 리본으로 여성미를 강조한 옷을 유행시켰다. 1990년대, 최 절정기를 맞이한 미니멀리즘 누가 뭐래도 1990년대는 미니멀리즘의 시대다. 이 시기에 절정기를 누린 수많은 디자이너는 지금도 패션계의 가장 막강한 파워로 자리하고 있다.

아르마니의 테일러드 재킷은 아마도 1980년대의 그 컬러풀한 현란함과 과장된 실루엣에 지쳐버린 사람들에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
운 존재였을 것이다. 아르마니의 심플한 룩은 당시로선 꽤나 센세이션해서, 리넨이나 저지 소재로 된 통 넓은 팬츠에 뉴트럴 톤의 재킷은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정신적 위안이 되어 주었다.

이때의 미니멀리즘은 그 강력한 위력 때문에 디자이너들에게 압박감 비슷한 것을 주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덧붙이고 싶어 안달이 난 맥시멀리즘 계열의 디자이너들은 촌스럽다는 주홍글씨가 붙여진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했다. 이사벨라 블로가 보증한 당대의 천재 알렉산더 맥퀸의 지방시 입성은 <르 몽드>나 <가디언>지의 스타일면 톱기사로 다뤄졌지만, 얼마안가 완벽한 실패로 판명되었다. 당시로선 자수와 레이스, 아플리케와 비즈는 고고한 철학을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로선 죄악시되는 재료일 뿐이었다. 아르마니가 밀라노에서 제국의 기초를 쌓고 있을 때, 대서양 건너 뉴욕에선 대단한 미니멀리스트 두 명이 동시에 출현했다. 바로 캘빈 클라인과 도나 카란이다. 이 때의 뉴욕은 바잉 파워 등 상업적인 측면에서 유럽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패션 헤게모니의 이동은 뉴욕 시크야말로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캘빈 클라인의 블랙 수트를 입기 시작했고, 도나 카란의 우아한 저지 드레스에 넋을 빼앗겼다. 캘빈 클라인과 도나 카란이 추구하던 모더니즘은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가장 순수한 의미의 전통적인 미니멀리즘이었다. 통 넓은 팬츠와 빳빳하게 다린 화이트 셔츠, 더블 브레이스트 재킷으로 이루어진 착장이나 다른 어떠한 요소 없이 잘 재단된 블랙 원피스나 풀 오버는 뉴요커들의 유니폼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유럽 본토에서도 미니멀리즘은 본격적으로 런웨이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이때의 유럽의 미니멀리즘은 스타일링의 한  방법으로 부각되었던 뉴욕 시크에 비해 좀 더 개념적인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 뭐, 굳이 용어를 갖다 붙이자면 ‘포스트 미니멀리즘’ 쯤 되겠다. 유럽의 디자이너들은 단지 단순하다는 것을 초월하여 구조적이고 새롭게 재구성된 것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디자이너가 바로 질 샌더다. “절제와 순수를 상징하는 미니멀리즘은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은 것을 나타내야 해요.” 냉철한 독일인인 그녀는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그레이 이외의 색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질 샌더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H라인은 50년대 말 무슈 디올이 보여주던 알파벳 라인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절제된 미학을 표방하고 있었다. 물론 질 샌더의 옷은 다른 미니멀리즘 계열의 디자이너 작품보다 아방가르드한 터치가 훨씬 진하게 묻어나는 것들이었다. 매우 간단해 보이면서도 이미테이션 업자들이 결코 따라할 수 없는 옷들! 요지 아먀모토와 꼼 데 가르송 등 1980년대 일본 정부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고 파리를 습격한 저팬 아방가르드 군단은 질 샌더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둥근 어깨선, 복숭아 뼈에서 어정쩡하게 잘린 팬츠 라인은 당시의 질 샌더라 발견한 황금 라인들이었다.

1990년 대 후반 미니멀리즘의 가장 큰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캐주얼과의 만남’이다. 1999년 질 샌더 런웨이에선 실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예의 그 간결한 룩이야 언제나 그렇듯이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그 날 만큼은 게스트들의 관심이 온통 모델들이 신은 신발에 쏠렸다. 신발 옆에는 질 샌더와 같은 독일산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푸마와 질 샌더의 이 혁명적인 콜라브리에션은 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진화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199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거론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헬무트 랭이다. 당시의 패션 피플에게 있어 랭은 무조건적인 ‘절대 선’이었다. 그가 하면 무조건 옳다는 인식이 패션계 전반에 팽배해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풍요와 좌절의 부침을 겪어야 했던 오스트리아 인 특유의 지성과 예술 정신이야말로 헬무트 랭 디자인의 전면에 흐르는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헬무트 랭을 유럽의 디자이너로 포함시켜야 할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시 패션 비즈니스 도시의 중심지는 침체기의 파리가 아니라 뉴욕이었고, 이런 권력 이동의 결정적 순간은 바로 헬무트 랭과 발렌티노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컬렉션 장소를 옮긴 것이었다.(물론 헬무트 랭의 은퇴와 발렌티노의 파리 복귀로 그들의 외도는 금새 끝나버렸지만….)

판매 촉진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근거지를 옮긴 발렌티노와 달리 헬무트 랭에게 있어 뉴욕은 영감을 주는 도시였다. 어쨌든 랭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일본과 홍콩에 이르기까지 미니멀리즘의 가장 파워풀한 전도자로 군림했다. 헬무트 랭이라는 예술가를 만나 데님과 파카, 티셔츠 등 스트리트 적 요소가 미니멀리즘에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이때 나타난 걸출한 미니멀리스트로는 현재까지 무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미우치아 프라다를 빼놓을 수 없다. 프라다를 상징하는 특수 소재(결코 나일론이 아니다!)로 된 블랙 백들은 미니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패션 하우스에서 나온 캐주얼한 백은 곧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미니멀리즘 대중화의 기수가 되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미니멀리즘은 어느 한 두 명의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철학의 범주를 넘어, 상시 공존하는 클래식으로 승격되었다. 설사 완벽한 맥시멀리즘의 시대라 할지라도 미니멀리즘은 트렌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 기세의 강약 여부가 있을 뿐이다. 가장 미국적인 스타일이라고 칭해지는 마이클 코어스는 스포티한 미니멀리즘으로 주목받았고, 마크 제이콥스는 젯셋족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던 럭셔리한 미니멀리즘으로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까지 꿰차게 되었다.

1990년대 홀연히 나타난 앤드밀레미스트, 덕 비켐버그, 발터 반 바이렌도크, 마리나 리, 덕 반 셰인 그리고 드리스 반 노튼 등 이른바 앤트워프 6인방과 해체주의를 표방한 마틴 마르지앨라는 미니멀리즘에 예술적인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들 벨기에 디자이너들은 일본 아방가르드가 지배하던 파리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고, 미니멀리즘의 영역 확장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2000년대, ‘절제된 맥시멀리즘’이란 이중적 의미의 미니멀리즘헬무트 랭의 돌연한 은퇴는 2000년 대 미니멀리즘의 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갑을 여는 정당한 이유를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패턴과 디테일에서 찾기 시작했다. 파리의 장인들은 결코 메스 브랜드가 따라할 수 없는 재단 -아니 조(carving)’적인 실루엣으로 여성들을 유혹했다. 우리 시대, 미니멀리즘의 최고봉은 역시 발렌시아가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아닐까. 그의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은 언제나 다른 요소와 적절하게 섞이는 ‘하이브리드’ 였다. 살짝 비틀어보면 기이해보이기까지 한 게스키에르의 룩은 우리 시대 새로운 미니멀리즘의 표준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무미건조하고 엄격한 마치 수녀복같은 미니멀리즘보다 다소 건축적인 요소나 퓨처리즘이 섞인 미니멀리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2000년대 초반 미니멀리즘의 영향력은 미미해졌다. 위에서 언급했듯 헬무트 랭은 뉴욕의 아티스트로 전업했고, 질 샌더는 프라다 그룹에 편입되었으며 캘빈 클라인은 몇 번의 난동 끝에 완전히 사라졌다. 프라다 역시 금세기 들어선 새로운 소재와 실루엣을 창조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고, 앤트워프 6인방의 영광은 몇몇 멤버의 부진으로 인해 급격히 소멸되었고 가장 명성이 높았던 앤 드밀레미스터의 디자인은 난해해해지 시작했다. 다시 미니멀리즘은 단지 디자이너가 트렌드를 표현하기 위한 부차적인 요소로 쓰일 뿐이었다. 확실히 2000년대는 빅터&롤프처럼 패브릭을 마치 화폭처럼 쓰는 아이디어 뱅크나 후세인 살라얀처럼 기술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는 과학자들이 주목받는 시대였다. 주도권은 다시 엄정한 뉴욕에서 패션의 판타지를 내포한 파리로 넘어왔다. 뉴욕 시크를 외치던 패션 매거진들이 프렌치 시크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2005년 자신의 첫 질 샌더 컬렉션에서 라프 시몬스는 지극히 미니멀한 옷들로 ‘미니멀리즘’의 귀환을 알렸다. 현재까지 라프 시몬스는 기하학적인 요소를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에 접목하고 있다. 건축적이고 정교한 테일러링은 질 샌더 아니 이 시기의 미니멀리즘을 설명할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수식어구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2008년 S/S 시즌을 맞아 심플한 실루엣의 퓨처리즘과 플라워 프린트로 대변되는 낭만주의가 결합한 놀라운 옷을 발표해 2000년대 미니멀리즘의 이정표를 세웠다. 한편 미국 쪽에서도 미니멀리즘의 명가 캘빈 클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란시스코 코스타는 솔기선이 없는 심플한 롱 드레스로 또 한번 위대한 전진을 이룩했다. 이 드레스는 무한육각면체처럼 입체적인 패턴이 돋보였는데, 워낙 많은 세포 분열을 이뤄 더 이상의 새로움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미니멀리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절제된 맥시멀리즘’ 혹은 ‘과도한 미니멀리즘’, 같은 듯 서로 다른 이 어구들이야 말로 2000년대 들어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는 미니멀리즘의 양면성을 설명할 수 있는 표현 아닐까.


그리고 2009년, 위대한 유산의 반복 이번 시즌, 트렌드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역시 ‘80년대’다. 그러나 그 한 켠으로 미니멀리즘이 다시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09 F/W 시즌에 나타난 미니멀리즘이 전혀 새로운 스타일이 아닌 전부터 있어왔던 유산을 재해석하고 다듬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물론 이러한 경향을 혹독한 경기 불황이 몰고 온 한시적인 바람이라 폄하할 수도 있다. 확실히 이번 시즌을 앞두고 디자이너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보다는 제각각 자신의 속한 하우스의 정통성을 유지, 보수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새로운 고객 창출보다 기존 고객의 지지를 얻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2009년의 미니멀리즘이 캐시카우 이외에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는 건 아니다. 영역 확장에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완성도를 갖추게 되었으니까. YSL의 스테파노 필라티는 르 스모킹을 다시 들고 나왔고, 라프 시몬스는 다소곳하지만 도발적인 면모를 숨기고 있는 기이한 미니멀리즘으로 질 샌더라는 미니멀리즘의 대표격인 하우스를 이끄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심지어 도나 카란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블랙 드레스로 마치 90년대를 회고하는 듯한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에디터들의 추억을 건드렸는지 근래 들어 최고의 쇼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아마도 2009년 식 미니멀리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룩은 드리스 반 노튼의 컬렉션에서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최근 들어 드리스 반 노튼은 ‘실루엣은 최대한 심플하게! 반면 컬러와 패턴은 화려하게!’를 주창하고 있다. 드리스 반 노튼의 재킷은 여러모로 80년대 패드가 들어간 재킷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현재의 미니멀리즘은 9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갖지 못했던 ‘관용’을 배우고 있는 과도기에 있는지 모른다. 80년대 혹은 90년대 모티프와 적절히 조화를 이룬 미니멀리즘을 이번 시즌만큼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볼드한 어깨 라인이 강조된 재킷과 심플한 팬츠, 우아한 롱 드레스와 무미건조한 블랙 원피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재에서만큼은 전통적인 공식을 거부하는 대담함. 우리가 지금에 와서 ‘미니멀리즘’에 페이지를 할애하는 건, 지금이 바로 이 방대한 스타일에 대해 거론할 적기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009년의 80년대 룩은 현란하고 과장되었던 오리지널 80년대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른 다소 파워드레싱이 가미된 캐주얼이란 걸 간과할 순 없다. 80년대 멋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청춘을 보냈던 어머니가 어떤 종류의 업데이트도 없이 옛 스타일 그대로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면 당신은 용납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아무리 당신이 10년 전 미니멀리즘의 전성시대 때 헬무트 랭이 말하는 미학에 경도되었던 신자였다 할지라도, 현재의 미니멀리즘은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비로소 완벽히 소화해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니멀리즘은 한 두 해 반짝하고 소멸되고 마는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오지만- ‘러시안 룩’일이나 ‘80s’처럼 트렌드의 작은 지류가 아닌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본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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